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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르셀 뒤샹(1887-1968)
제목 마르셀 뒤샹(1887-1968)
작성자 그림틀 (ip:58.76.151.46)
작성일 2006-05-25 11:40:4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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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회수 855
평점 0점

   
   마르셀 뒤샹의 생애
(1887.7.28~1968.10.2)

노르망디의 작은 동네 블렝비에에서 성공한 공증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.
여섯 남매 가운데 두 형은 아버지가 반대하는 예술가가 되었는데
바로 화가 자크 비용과 조각가 레이몽 뒤샹 비용이다.
누이 수잔느도 화가가 되어 나중에 화가남편 장 크로티와 함께 다다에 동참했다.
그러나 뒤샹이 예술가가 되는데는 아버지의 특별한 반대가 없었던 것 같다.
그들의 예술에 대한 재능은 타고난 것 같은데
할아버지 에밀 니콜은 성공한 화가였고 아버지도 재능있는 판화가였다.

파리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하며
신문에 이따금 드로잉을 기고했으며 잠시 도서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.
이 무렵 파리 북서쪽 퓌토에 있는 뒤샹 형제의 화실에서는
매주 일요일 아폴리네르, 피카비아, 레제를
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.
그후 1910년에 그린 <장기 두는 사람들>과 <예술가의 아버지>에는
세잔느의 영향과 입체주의 회화방법이 보인다.

1913년 아모리 쇼에 <계단을 내려가는 누드>(1912)를 출품해
큰 물의를 빚은 뒤로 뉴욕에서 피카비아와 함께 다다 운동을 시작한다.
1915년에는 스티글리츠의 후원을 받아 정기 간행물≪291≫을 창간했다.
유태인 스티글리츠는 일찌감치 유럽의 모더니즘을
미국에 이식한 사진가로 맨하탄 5번가 291번지에
화랑을 열고 아방가르드 작품을 소개했는데
주소를 따서 화랑을 291이라고 불렀다.

1918년 마지막 유화 <너는 나를>을 제작한 뒤로는
회화와 결별하고 서양 장기에 몰두해 프랑스와 미국의
수많은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.
미국인 예술 수집가 캐서린 드라이어와 만 레이와 함께
1920년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뮤지엄 무명사회(Societe Anonyme)를 열었다.

1966년 회고전이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성대하게 열렸으며
마지막 작품 <주어졌을 때>가 완성되었다.
1968년 프랑스를 방문하던 중 10월 2일에 타계했다.
가족들과 함께 유해가 안장된 루엥 묘지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.
"모든 것들은 같다. 그것들은 늘 사망한 다른 것들이다."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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